여행길에서/경상도

[경북/안동]부용대 아래 화천서원과 옥연정사

여울가 2011. 11. 18. 17:24

부용대를 오르는 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한 화천서원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163호로써 조선중기 퇴계학문(退溪學門)에서

수학한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선생의 학덕(學德)을 기리고자

유림(儒林)이 뜻을 모아 서원을 건립하여 묘우(廟宇=祠堂)를 짓고,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자인 東離 金允安(본관 : 順天, 1560-1620)공과

종손자인 拙齋 柳元之(1598-1674)공을 배향하였으며,

선생의 학덕을 이어받고 추모하기위한 제향(祭享)의 기능을 갖춘 곳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l868년(고종5년 9월3일) 대원군이

사액서원 (賜額書院)중 원액서원(元額書院)만 남기고

모든 서원을 철폐하는 1차 때에는 철폐되지 않았으나

3년뒤인 1871년(고종8년 3월18일) 2차 때에는 철폐되었다.
100여년이 지난 1966년부터 후손들과 유림에 의해 기금을 모아

사림 (士林)의 공론으로 서원 복설을 완공하였다 .

 

 

 

 

 

서원은 문이 열려있지 않아서 겉에서만 돌아보고 옥연정사로 향했다.

울 친구 옥연이 땜에 또한 정사라는 이름땜에 웃고 수다를 떨다가

그곳의 유생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다.

정사는 서당 겸 별장 겸이었나 보다.

옥연정사는 사적 제88호로 서애 류성룔 선생이 1588년에 지은 정사이다.

玉淵精舍(옥연정사)는 임진왜란을 어렵게 치룬 그의 삶과 모습, 생각과 인생, 분위기가 배어 있는 곳이다.

류성룡 선생은 탄홍스님의 도움을 받아 옥연정사를 마련한 다음

이 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옥연서당기」로 남겼다.

선생이 관직에서 물어난 뒤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징비록 '을 쓴 장소로도 그 의미가 깊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강물이 이곳에 이르러 깊어지는데,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옥과 같아서 정자 이름도 '玉淵'이라고 하였다.

                                                                화천서원에서 옥연정사 가는 길

 

 

 

 

 

 

 

                                               하회마을에서 건너다 보이는 옥연정사(위)와 화천서원((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