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가옥. 윤선도가 현종 11년(1670)에 처음 지은 집으로 그 후 후손인 윤두서가 옮겨 살았다.
당시 안채, 사랑채, 문간채 등 48칸 전통가옥이었으나, 지금은 안채 13칸, 곳간채 3칸, 헛간, 사당만 남아 있다.
산돌 평축으로 쌓은 기단 위에 있는 안채는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지붕을 높이 쳐들지 않았다.
이는 바닷바람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 고안된 구조이다. 대청 양쪽으로 안방과 부엌 등이 이어지고 툇마루가 있다.
벽은 용도에 따라 회 또는 판자를 이용하여 만들었고 광의 남쪽 지붕은 사다리꼴 모양의 우진각지붕이다.
곳간채 사이 공간이 안채를 출입하는 통로이다.
상세설명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인 공재 윤두서(1668∼1715)가 살던 집이라고 한다.
윤두서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의 3재로 일컬어지며,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증손자이다.
윤선도가 풍수지리상 명당터에 이 집을 지었으나,
바닷바람이 심해 다른 곳으로 옮기고 증손인 윤두서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지은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종 11년(1670)에 지어 후에 윤두서가 살게 되었고
순조 11년(1811)에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지을 당시에는 문간채와 사랑채 등 48칸 규모였다고 하나, 지금은 안채와 곳간채·헛간·사당만이 남아있다.
ㄷ자형의 안채는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고,
북서쪽에 위치한 광의 남측지붕은 앞면이 사다리꼴 모양인 우진각지붕이다.
바닷바람의 영향을 막고자 지붕을 높이 쳐들지 않고 푹 덮었으며,
벽은 방의 용도에 따라 회벽과 판자벽을 조성하였다.
문인화가의 옛집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수법이 잘 남아있는 유서깊은 전통주택이며,
인근마을에 해남 윤씨의 기와집 10세대가 있어 더욱 옛스러운 정취를 풍기고 있다.
“지리학자가 된 윤두서”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인 윤두서는
어느 날 숙종으로부터 일본지도를 그리라는 명을 받았다.
임진왜란의 치욕을 다시 겪지 않겠다는 왕의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윤두서는 똘똘하고 민첩한 48명을 일본에 보내어 3년간 일본 전역을 조사하도록 하였다.
그들이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완성된 것이 <일본여도>이다.
이외에도 다채로운 물감으로 한반도를 묘사한 <동국여지지도>도 있다.
이 지도는 항아리에 보관하여 땅 속에 묻어놓아서 소실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는데
윤선도 유물전시관에서 보고는 거의 대동여지도와 흡사한ㄴ 모습에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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