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런 그리스도인/하느님은 나의 전부

[충남/공주]중세 고딕건축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공주중동성당

여울가 2012. 2. 4. 10:47

황새바위성지에서 미사 전에 4년~10년의 긴 냉담생활을 청산(?)하고 고해성사를 본

 친구들과 함께 보속의 기도를 바치러 공주중동성당을 찾았다.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성당은 고딕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고,

높은 종탑이 아름다운 성당이다.

천주교는 프랑스 선교사들과 우리나라에 전파 되면서

선교사업과 함께 교육, 의료사업 등의 활동을 하여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독교가 그랬던 것처럼 천주교도 종교와 함께 독특한 건축물을 들여오는데

우리는 이를 두고 '성당'이라 지칭하여 '미국식 교회 건축'과 구분 짓고 있다.

 

공주지역의 성당 건축은 1898년 프랑스 진 베드로 신부가 처음 교당을 세우고

공주에 교리전파를 시작함으로써 비롯된다. 지금의 공주 중동성당의 전신인 셈이다.

가파른 언덕에 위치하여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지어진 지금의 성당건물은

1934년 착공하여1936년에 완공하였는데

본당과 교육관이 남아있다.

성당 건물은 서양 중세기의 고딕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는

매우 단아하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중동성당은 공주 시가지 중심부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서

본당 건물 앞에 서면 시가지가 한눈에 바라다 보일만큼 전망이 좋으며, 서북방향으로 황새바위성지가 조망된다.

 

 

이 성당은 평면이 약간 변형된 라틴식 십자가형으로, 외관이 붉은 벽돌로 되어있다.

중앙 현관의 꼭대기에는 높은 종탑이 있고,

현관 출입구와 창의 윗부분은 끝이 뾰쪽한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는 중앙에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를 놓고 그 양쪽에 복도를 둔 형식이다.

중앙의 넓은 공간과 복도 사이에는 6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단면이 6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착공하여 완공한 것으로,

전통적인 목조건물에서 현대 건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이 성당은

1998년 7월 25일 공주시 시도기념물 제14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공식명칭은 '공주중동성당(公州中洞聖堂)'이다.

 

100여년 고난의 세월동안 박해는 서울과 지방에서 끊임없이 천주교 신자들의 생명과 재산을 요구 하였고,

순교를 하지 않은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가난과 쫓김과 초조 가운데서 신앙을 위한 투쟁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다.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에 위치하고 있는 수리치골 성지를 비롯하여 17개소에 이르는 공주의 여러 산골은

이들 신자들에게 좋은 은거지가 되었으며, 기록에 의하면 박해시대 때 신자들이 이룬 산골 은거지의 공동체 삶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이상적 삶이었다고 한다.

신심(信心)을 놓는다면 해방 될 수 있는 온갖 핍박에 아랑곳없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가고자 하였던 사람들...

  부귀영화에 아랑곳없이 가진 것을 나누며,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고난의 세월을 딛고자하였던 사람들....

그들에게 요구되던 온갖 핍박과 가난, 죽임은 이미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해 감내할 수 있는 극복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와 목숨으로 바꾼 한국 천주교는 그분들의 순교가 결코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복음 전파를 위하여 신자 모두가 기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