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일 저런일/사는 즐거움

친구에게...

여울가 2006. 7. 4. 16:00

예쁜 편지지에 동글동글한 글씨로 쓰여진 편지를

받아 본지 몇 년 만인지...

우리 집 우편물함에 들어있는 하얀 편지 봉투 한 개가

어제 밤늦도록 내게 흥분과 감동을 주었다.


형제보다도 자주 만날 수 있는 사람...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

외롭다고 투정하면 포근히 안아줄 사람...

바로 그런 사람,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보낸 편지였다.


비교적 자주 만나기도 하고 전화도 하는 친구가

편지를 보내온 것에 의아해 하면서

약간의 떨림을 손끝에  느끼면서

그렇게 봉투를 뜯었다.


친구야, 

우리 친구들은 좀 별난 구석이 있어.

여느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할 일들을 잘 저지르고 다녔었지.

어느 해 여름에 강원도에 여행을 갔었지.

7번 국도를 달리다가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조그마한 아파트에  구경간 적이 있었지?

우리는 모두 돈을 모아서 그 아파트 한 채를

사자고 했었는데...

해수욕장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그 아파트를 사자고 하다가

결국 마음만 먹고 뒤돌아 나올 때 많이 아쉬워했었지.

사계절 바다를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우리들만의 아지트를

내가 꼭 마련할게...

난 할 수 있어...내가 꼭 이룰게..

네가 내 곁에서 늘 관심 갖고 지켜 봐 주라.

우리가 좋아하는 여행도 마음껏 해보고

어디에선가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찾아다니며

봉사하며 살자꾸나.

너도 너무 무리하게 하지 말고 건강 지키며 살자꾸나.


편지의 일부분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친구와 나는 수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어느 해 추석 명절에는 남편과 아이들만 시댁에 보내고

밤새 차를 타고 드라이브와 먹기를 반복하며

양수리를 헤매었고...

 밤하늘에 둥그런 보름달과 보석처럼 박힌 별들을

환호하며 모닥불가에 앉아 고구마도 구워 먹고...

때이른 코스모스와 함께 사진도 찍으면서...

태국과 싱가폴에도 같이 가서 영광 백수면

농부님들 앞에서 얼마나 대장 노릇을 했었던지..

여행 후 백수면에 놀러갔다가 된장이며 고추며 조개며

곡식들을 바리바리 트렁크에 챙겨 싣고 냅다 달리다가

과속으로 잡혀 경찰에게 벌섰던 일..

영광에서 잘나가는(?) 남자들과 방죽가에서

토하잡이를 하던

그 겁났던 밤..

총무 스님 선배 찾아간 위봉사 절간에서

한여름에도 추워 덜덜떨며 잠잤던 일..

대천 바닷가에서 “표는 끊었쥬?”묻던 아저씨들

얼굴 점수 매기던 일..

무창포 바닷가에서 망둥어 낚시하여 민박 아저씨가 회떠준 걸 깻잎에 싸 먹었던 일..

물 빠진 바닷가에 후레시 들고 나가서 네발로 기어 다니며 피조개도 잡았었지.

아, 그날 밤 맥주까지 챙겨들고서 바닷가에 앉아 온갖 폼을 다 잡았지..

내가 교통사고를 내서 신태인으로 차 찾으러 가던 길엔

백양사 산채 비빔밥과 선운사 복분자주에 풍천 장어..

그리고 도솔암에 올라서

복주머니도 사고 부처님 뱃속에 들어가서 소원도

빌었었는데..

속초에 갔다 오던 길에 먹었던 열무김치냉면 맛은

냉면을 먹을 때마다 생각이 날 정도...


내 기억의 한계로 친구와의 추억을 다 떠올릴 순 없지만

내겐 부모 형제보다 더 피붙이같은 친구...

가끔씩 세상살이가 힘겹다고 느껴질 때

내게 이런 친구들이 있음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이제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자꾸만 빨라지는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친구들과 함께할 시간을 늘려 보고만 싶은데..

해묵은 참나무처럼 모진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우리들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기도하며

삶의 끝자락에 서는 그날까지 진정 동행하고픈 사람들,

바로 그대들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200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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