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경상도 178

봉황이 머물고 있는 순흥 봉서루

봉황이 살고 있는 순흥 봉서루 고려시대 때 건립된 이 누각은 영남에서 가장 유서깊은 누각 중의 하나이다. 전설에 의하면 봉서루는 순흥의 진산 비봉산에 사는 봉황이 날아가면 고을이 쇠퇴한다고 하여, 고을 남쪽에 누각을 지어 봉황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세웠다고 한다. 누각 이름은 봉서루(봉황이 머무는 곳)로 하고 누각 뒤쪽에는 봉황을 맞이한다는 뜻의 영봉루라는 현판을 걸었다. 현재 이 누각에는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진 '홍주도호부아문'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려있다. 누각 앞에는 봉황의 알로 여겨지는 둥글고 커다란 바윗돌들이 놓여 있다. #영주시

삼국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순흥벽화고분

삼국시대를 읽을 수 있는 영주순흥벽화고분 순흥 읍내리 비봉산 기슭에 자리한 이 고분은 539년 경에 축조된 것으로, 고구려에 인접한 신라의 변방이라는 지리적 의치 때문에 고구려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벽화나 구조로 보아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축조된 고대신라의 고분벽화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고분에 있는 벽화를 통해서 우리나라 삼국시대 회화는 물론 당시의 종교관, 내세 그리고 고구려와의 문화교섭 등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5세기까지 고구려의 영향력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이 지역에 침투했음을 잘 알려주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85년에 발굴된 이 고분의 내면에는 석회가 두껍게 발라져 있고, 현실의 동벽에는 봉황이, 남벽에는 역사(力士)가, 북벽에는 구름,꽃,서조,연꽃이 ..

순흥안씨 추원단

순흥안씨 추원단(順興安氏 追遠壇) 순흥 안씨 추원단은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산 21번지에 있다. 시조공(安子美)을 비롯하여 12분 선조의 묘소(墓所)가 실존 됨으로써 그 묘대신 단(壇)을 모셔 놓은 곳으로 순흥의 명산(名山) 비봉산(飛鳳山) 남쪽 4만3천평에 조성하였다. 왼쪽에는 출입구이며 출입구 왼쪽 기둥에 숭조보본영세돈목(崇祖報本永世敦睦) 글귀가 있고, 오른쪽 기둥에는 순흥안씨추원단(順興安氏追遠壇)이라는 글귀가 있다. 「순흥안씨(順興安氏) 추원단비(追遠壇碑)」에는 시조이하 7대에 이르는 선조님들의 빛나는 사적과 관향지 종사(宗事) 연혁, 종사에 힘쓴 선조들의 기적(紀蹟), 시조사단을 이전하여 중건한 사실들을 기록해 놓았다. 이곳에서 매년 음력 10월1일 전국의 후손들이 모여 세사(歲祀)를 지내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영주 소수서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 소수서원(紹修書院) 서원은 조선의 선비들이 공부하던 곳이다. 소백산 비로봉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맑은 죽계천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우리나라 사립교육기관의 첫 발자취인 소수서원이 있다.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사액서원은 임금님으로부터 책,토지,노비를 하사받고 면역의 특권을 받았다. 소수서원은 주세붕(周世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선구자 문성공 안향 선생이 젊어서 공부하던 이곳 백운동에 1542에 영정을 모신 사묘(祠廟)를 세웠다. 이듬해인 1543년 8월 11일에 완공하여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고, 중국에서 주자가 세운 백록동서원을 본떠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

보물 제832호 성혈사 나한전

보물 제832호 성혈사 나한전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성혈사에는 꽃살 창호로 유명한 나한전이 있다. 배흘림 기둥으로 자연미를 살렸으며, 정면 3칸의 창호를 꽃살 창호로 장식하고, 창호의 어칸 부분은 연못속의 게,물고기,동자상,여의주,기러기 등이 조각되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승전(僧傳)에는 성승(聖僧)이 바윗굴에서 나왔으므로 성혈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현재에도 그 굴이 있다. 『재향지(梓鄕誌)』에 의하면 성혈사는 초암사 동쪽 골짜기에 있는데 초암사와 같은 때 창건했다는 내용을 전한다. 성혈사는 초암사와 부석사의 사이에 있으며 바위굴은 절 아래 30m 지점에 있다. 이 절의 비로자나불상은 9세기 무렵 조성되었다. 최근에 발견된 기문에 의하면, 이 절의 나한전은 1553년(명종 8)에..

보수중인 순흥향교

지금 순흥향교는 보수 공사 중... 향교는 고려와 조선시대 유교교육과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제향을 올리기 위해 설립한 관학 교육기관이다. 강학장소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그 좌우의동무와 서무에는 공자와 성현들의 위폐를 모시고 매년 봄 가을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영주시

충절을 지키다 스러져간 금성대군 신단

붉은 충절이 서린 영주 금성대군 신단 금성대군 신단은 단종 복위운동 당시 위리안치로 갇혀있던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이 격문(대자보)을 만들었다. 이를 눈치 챈 시녀 금연이가 순흥부사 관노인 이동에게 이격문을 빼돌려 주었고, 이동은 이것을 들고 죽령을 넘어 조정에 갖다주게 되었다. 세조는 이런 격문을 받은 순흥부의 모든 백성은 역적이니 모두 죽이라는 명을 내렸고 700여호가 참사를 당했다. 이때 핏덩이부터 세살까지는 살려두라 하여 이 아이들을 빼앗아 다리 밑에 버렸고, 아이가 없는 다른 지방 사람들이 입양해서 키우게 되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는 말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아기가 네살 정도 되면 자신의 어렸을 때의 기억을 할 수 있어서 세살까지만 살려둔 것이라고 한 것인데 ..

세계유산에 등재된 영주 부석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영주 부석사 부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676년에 창건하고 화엄종을 널리 전했다고 한다. 〈송고승전(宋高僧傳)〉 의상전에는 의상과 선묘, 부석사 창건에 관한 설화가 자세히 적혀 있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 또는 흥교사라 불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 부석의 향음으로 보기도 한다. 의상을 부석존자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 부석종이라 하는 것은 이 절의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다. 의상 이후 혜철을 비롯하여 신라 무열왕의 8대손인 무염과 징효 등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다. 만년에 이곳에 머문 원융은 대장경을 인쇄했는데 지금 부석사에 전하고 있는 화엄경판은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

우리가 콩의 종주국, 콩세계박물관

인류를 위한 가치가 큰 콩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는 콩세계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콩의 종주국인 우리나라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토종 콩의 명맥을 이어온 '부석태'의 고장인 영주시 부석면에 건립되었다. 콩과 관련된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콩박물관은 세계 최초의 콩 전문 과학관으로 콩을 이용한 올바른 먹거리 정립에 앞장서고 있다. 콩을 나타내는 한자어가 숙(菽),두(豆), 태(太) 이렇게 세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숙맥같다는 뜻은 콩인지 보리인지 구분을 못한다는 의미라는 사실도...